Art 기록자, 예술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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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근처 작업 공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아트 라이브러리, 원당마을한옥도서관
홀로 서울 구석 동네에 지내는 것은 사뭇 외로운 일이다. 미술관이나 예술서적들을 볼 수 있는 곳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한 시간씩 타고 다녀야 하는데, 이제는 버스나 지하철 냄새만 맡아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무언가를 즐기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리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 잔잔하게 남아 있는 멀미 때문에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연이 가까운 동네를 선택한 대가였다. 이제는 정말로 집과 가까운 '대안 공간'이 필요한 순간이다.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따금씩 집을 벗어나는 근무 공간이 절실할 때가 있다. 수유와 가까운 곳에서 책과 함께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을 탐색해보았다. 덕분에 서울 유명 도서관보다 훨씬 여유로운 환경을 찾아냈다. 이곳들을 알게 된 후로는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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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 아트 북으로 만나는 경계 없는 상상
문장 서너 개와 서툰 그림이 담긴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다섯 살 때부터 30대가 된 지금까지 일기를 써오고 있다. 콜라주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일기는 점차 '오직 나만을 위한 매거진'이 되어갔다. 기록을 책이라는 형태로 처음 엮을 때는 별다른 경험이 없어서 가장 익숙한 보편적인 책 형식에 담아냈다. 숲의 적막과 고요한 세계, 그곳에서 경험하는 일들. 이를 활자로 표현해 읽는 이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책이 완성된 후, 나중에 그림책 에디션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은 기존 방식이 아닌 뜻밖의 형태를 만나거나. '가장 나다운 책'이 어떤 걸까 고민하던 중 부산 중구 독립서점 '피스 카인드 홈'의 프랭코 님과 사진전시를 겸한 독립출판을 기획해 볼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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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렉트로닉, 생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2)
자정이 넘은 캄캄한 밤, 도쿄에서 열린 MUTEK 금요일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적인 앰비언트로 시작해 숨 막히는 하드코어 테크노까지, 일렉트로닉 세계를 다양하게 여행한 밤이었다. 낯설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던 공연은 12월의 얼어붙은 밤공기를 뜨겁게 녹여냈다. 5시간가량 이어진 스탠딩에 몸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연료를 태운 열기구처럼 자꾸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두꺼운 외투를 벗자 어깨와 목덜미에 갇혀 있던 뜨거운 공기가 공중으로 날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언덕,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소년 무리를 마주쳤다. 밤을 긁는 날카롭고 거친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늦은 밤 시간을 한낮처럼 쓰며 넘어지고, 엎어지고, 어디 하나 크게 부러질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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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렉트로닉,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1)
시간은 평평한 모래사장이다. 어느 한 곳에 빈 구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모래를 쌓아 올려야 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모래 알갱이와 바닷물이 뒤섞여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모든 것이 덮인 표면, 뒤돌아보면 시간은 그런 식으로 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도쿄에서 보내는 나흘 간의 가벼운 시간을 위해 다른 날들을 묵직하게 보냈다. 금요일 오전 8시에 떠나는 비행기라 전날 퇴근 후 마감 작업을 정리하고 짐을 다 챙기고 나니 새벽 2시. 세 시간 후에 다시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고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서 기절해 잠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고 피곤하게 일본행을 강행한 이유가 있다. 12월이 될 때까지 휴가를 잘 참아왔고, 단순한 휴가가 아닌 독특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이 시간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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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도쿄에서 만나는 아방가르드 일렉트로닉 음악・디지털 예술 축제 <2022 MUTEK Tokyo>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친한 언니와 함께 분무기 같은 가벼운 비를 맞으며 데크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하늘에 흩어진 빗물이 희뿌연 장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간단한 술과 안주로 저녁을 먹고 있던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입고 있던 재킷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졌다. 선실 안에 있던 타올로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사람처럼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아주 서서히,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가 나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봄밤의 가랑비처럼 내가 서서히 스며든 세계가 있다. 종이와 아날로그,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는 성질이 별안간 이라는 기계의 중심부로 향한 것이다. 경멸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지독한 편견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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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천재 뮤지션과 인공지능의 선물, 제임스 블레이크xEndel의 "Wind Down"
2022년 5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영국 아티스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낯선 음반을 만났다. 개인의 상황에 맞는 사운드 환경을 제공하는 독일의 소프트웨어 Endel사와 함께 협업한 음반이라고 한다. Endel은 사운드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집중하고 좋은 잠을 자고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커버 사진을 훑어보면 아래쪽에 'Science-powered Soundscapes'라고 적혀 있다. 애초에 수면 유도를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임스 블레이크의 다른 음반들보다 앰비언트적인 특성을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곡들은 마치 2019년 발매된 [Assume Form]의 마지막 트랙 'Lullaby for My Insomn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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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농밀하게 그려낸 정글 속 기타 사운드, FKJ - Greener (feat. Santana)
내가 추구하는 삶의 색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FKJ(French Kiwi Juice)"라고 대답할 수 있다. 최근 [Just Piano]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운드를 선사한 FKJ가 2022년 4월 8일 신곡을 공개했다.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산타나(Santana)와 함께. FKJ와 산타나, 이 두 사람의 합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곡의 첫 버전을 들은 FKJ 친구 한 명이 '리드 기타에서 산타나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단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FKJ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요. 산타나는 FKJ가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란 영웅이었으니까. 이를 계기로 산타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FKJ는 그를 향한 존경과 함께 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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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감독의 영화
우리는 글이나 회화, 데생을 통해 세상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비해 전자의 결과물은 실제와 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백지에서 작가의 노력에 의해 글자와 물감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생각이나 의식이 완전하게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일 때,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사진의 조작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진이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정도가 글이나 그림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증거 자료로 활용되며 본인 확인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진이 충실히 이 세상만을 반영하기만 할까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100..
Works 기록자의 작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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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해킹스쿨 '창업형 인간되기 5일 프로젝트'를 마치며
라이프해킹스쿨에서 진행한 '창업형 인간되기' 선행과정 5일 프로젝트가 모두 끝났다. 매일매일 수업과 과제를 잘 따라가면 수요일에 시작해 일요일에 본 강의와 과제가 모두 끝난다. 10월 말에 전시 설치와 워크숍을 마치고 나면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11월 15일에 시작하는 강의를 신청했다. 다행이었다. 퇴근 후에 강의를 듣고 과제 2개(네이버 카페에 요약 정리, 블로그 미션)를 끝내느라 하루를 꼬박 채워야했으니! 오전에 5일 차, 6일 차(8주짜리 본 과정에 대한 소개) 강의를 마저 듣고 마지막 과제를 하기 위해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선생님은 "노력과 성취는 눈덩이처럼 커질 테지만 고통은 순간뿐"이라고 하셨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잘 참고 인내해서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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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사업 자격 요건과 유용한 카피라이팅 쓰기
정부 지원 사업, 나도 가능할까? 마을기업에서 4년간 일하며 보조금 지원 사업의 성과 보고서를 꽤 많이 작성했다. 내가 일했던 마을기업 역시 1차, 2차, 고도화, 우수 단계를 밟아가며 정부 보조금을 받았고, 현재까지 역량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기업으로 롱런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있다면 초기 자본이 없을 때 큰돈을 상환할 필요도 없이 사업체를 일으킬 수 있다. 이유로 정부 지원 사업은 예비 창업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절대로 막 퍼주지는 않는다. 돈을 지원해 줄 근거와 명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사업이 정부 지원 사업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사업이 'IT 등의 기술'을 이용하는지 여부. 단순 요식업은 여기서 아웃이지만, 특별히 개발된 기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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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고객을 알면 백전백승
확률 높은 가설 세우기 창업은 나에게 매우 강력한 '회피 동기'다. 내가 치를 떨 만큼 피하고 싶은 상황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일. '아니, 창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냐.'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도 아닌 것 같은데?'라는 호기로운 생각도 든다. 2025년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한국에서든, 독일에서든, 혹은 그 어디에서든 내가 투자하는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나의 삶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예술가로 살고 싶다.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더더욱 창업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내 작업과 삶,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는 삶.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이 이루어지는 삶. 언어와 이미지를 다듬는 삶. 내가 직접 전면적으로 가치 있다고 믿는 삶을 살며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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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형 인간, 나중에 말고 '지금' 되어야한다
스스로 자처하는 스트레스 “제발 좀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전화 너머로 엄마의 당부가 들려왔다.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예술가처럼 살자고 고등학생 때부터 다짐해 왔다.대학생 때는 음악 동아리 활동과 학업, 전시와 공연, 직장인이 되어서는 회사일과 프리랜서 일, 전시와 개인 작업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나.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은 일 하나만 하고 살고 싶어요, 엄마.) 하지만 용기가 부족하고 사업을 할 배짱까지는 없는 존재에게 24시간은 늘 밥벌이와 원하는 삶을 위해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찼다. 항상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더 쓸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사실 이런 식의 밀도는 운 좋게 하는 일이 '한 가지' 분야로 줄어들어도 여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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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 간절한 이유
우리의 시간과 돈은 한정되어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타인의 시선과 목소리가 비중이 크면 나를 위한 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세계관의 축적에 있다. 사소한 일에, 타인의 잣대에 의해 나의 자원이 어딘가로 투입되는 것이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인 것이다. 다만 피가 보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교묘히 진행될 뿐. 그때 내가 멀리볼 수 있었더라면-1 대학 생활을 시작한 2010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글을 쓰는 양도 어마어마했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았다.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리뷰를 쓰다가 해외인디음악을 배급하는 레이블의 제안으로 한달에 한번씩 음반을 공급 받아 리뷰를 쓰는 일도 했다. 그러다가 티스토리라는 존재를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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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으로 만끽하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겨울
기회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4년 5개월 동안 몸을 담았던 직장의 마지막 근무날.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에게 두 달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서 결혼할 언니를 만나고, 독일에 있는 연인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년 동안 오랜 휴식은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억에 남는 가장 진한 휴식이라면 2022년 3월,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채 지냈던 일주일이 전부. 회사일을 하면서도 의뢰받은 글을 쓰는 일과 번역일, 사진일 등의 작업들을 병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고, 다니던 회사도 일주일 이상의 순수한 휴가를 가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특기는 무엇보다 나는 슬프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라, 허락된 여건 안에서 행복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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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나를 태우지 말고 시간을 태우자
서울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밤. 할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늘 포근하게 나를 감싸던 이불이 그날 밤에는 무거운 철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서늘해지는 호흡과 두근거리는 심장. 좁고 긴 불안의 터널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에게 찾아오는 이상신호였다. 1단계 - 정면돌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불안과 걱정을 마주한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긴장과 피로가 쌓이면 평소보다 더 쉽게 에너지가 바닥나고 부정적인 상태로 흘러가기 쉽다. 불안한 감정에 대한 나의 첫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슬프고 처절한 기분으로 반쪽자리 주말을 보내느니 차라리 원인을 없애는 방향으로 시간을 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불안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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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에 맞는 직업, 과연 존재하는 걸까?
12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끝으로 부산에서의 직장 생활을 마쳤다. "미쳤네! 퇴사 기분 제대로 만끽하는구나?" 폭풍 같은 업무 이후 단 하루 쉬고 새벽부터 출국. 내가 봐도 아주 떠나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다. (실상은 저렴한 티켓을 구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지만!) 밀라노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2023년의 첫날을 맞이했다. 휴가와 일이 섞인 '워케이션(Workation)'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한 달 반 가량 지낼 계획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기록자로서 또 다른 일을 시작하는 3월이 되기 전, 그동안 무진 애써 왔던 나에게 특별한 작업 환경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이전 직장에서 얻은 것 새벽부터 한낮까지 정신없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비행기에서 숨을 고르고 있으니 그동안 후루룩 지나갔던 시간들이 떠오른..
Journal 기록자, 기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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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다이어리 추천! 가성비 좋고 심플한 대용량 무지 양장 노트(인디고 프리즘 280 B6 블루그린)
2023년은 다이어리를 무려 두 권이나 쓰고 있는 중이다. '공장'에서 만든 클래식 저널 무지노트 블랙을 선택했는데, 올해 7월이 끝날 때쯤 노트가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 2024년에 쓰려고 한 권 더 준비해 두었는데 어쩔 수 없이 8월부터 새 노트로 시작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개인적인 일정도 구체적인 2024년 계획이 계속 나오고 있는 시점이라 다이어리를 조금 일찍 구매했다. 공장 무지노트가 한 권에 160페이지였으니 다음 다이어리는 이보다 페이지수가 훨씬 넉넉한 것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나의 내년 다이어리 선택 기준 2024년 다이어리에 적용된 나의 기준은 간단하다. 너무 비싸지 않을 것. 특별히 사용해보고 싶은 노트를 발견할 때면 과감히 투자를 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최대한으로 돈을 모으고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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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록을 경험하는 공간, 프랭코의
요즘 남천동 타코들며쎄쎄쎄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다. 5월부터 7월까지 넉넉한 기간으로 열린다. 덕분에 전시에 오시는 손님들도 급하지 않게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어 한 번에 한 분씩 차분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일은 컨디션 관리. '체력과 기분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진행했다. 그래서 4월에는 몸과 정신의 상태를 살피며 살얼음을 걷듯 할 일들을 해나갔다. 전시가 시작되었고 이제야 미뤄둔 피로가 한 움큼 밀려오고 있지만,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후련하다. "돈 쓰고, 시간 쓰고, 피곤해서 아프고, 액자 때문에 짐만 늘고, 이리저리 손해만 보는 사진전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손목 통증, 발목 통증, 최근에는 다래끼 초기 증상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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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집중에 도움이 되는 장소와 환경 찾기
평소에 즐겨 기록하는 장소들을 떠올려볼 때, '과연 한 사람의 자아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소란과 적막을 오갑니다. 소음이 들리지 않는 배 위의 작업실에서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떠들썩한 어느 바에서도 비슷한 집중력과 즐거움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극단적인 환경이지만, 이 두 장소의 교집합을 찾아보면 기록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드러날 것 같네요. 다양한 장소에서 2시간 이상의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1. 등을 기댈 수 있는 무언가 한 번은 어느 늦은 밤, 10년 만에 다시 본 영화 을 보고 그동안 고여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마그마처럼 분출되기 직전에 이른 적이 있습니다. 한 가닥의 생각만 뽑아내면 더 깊은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요. 작은 노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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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솔직함에 대하여
꼬마일 때 쓰던 가벼운 일기들은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 사생활을 누릴수록 그 내용이 풍부해집니다. 금고에 넣지 않는 이상 종이 다이어리에는 보안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100% 솔직하게 기록할 수 없는 일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가끔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다 밝힐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건에 얽힌 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가끔은 세상의 눈에서 벗어난 일들을 삶에서 허용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함 1. 기록자의 절벽 기록자 스스로 솔직함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은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나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입니다. 저는 이 순간을 '기록자의 절벽(Author's Cliff)'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 문장에서 어떠한 사실을 전달할 경우, 마치 절벽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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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을 다루는 기록자
기록자, 사진을 만나다 다이어리 말고도 중요한 기록 수단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글로 담지 못하는 것을 빛으로 그릴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카메라'입니다. 사진은 저에게 침묵을 허용해주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도 침묵과 비슷하지만, 글은 단어와 문장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자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저는 뷰파인더 속 풍경이 시간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느린 순간을 좋아합니다. 마침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면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사진은 기록의 수단으로도 훌륭하지만 자기 표현의 한 장르로써 사진을 대하는 마음도 설렙니다. 사진에 대한 욕구가 일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DSLR카메라를 써보고 싶었지만 따로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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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밖에서
오늘은 햇살이 좋아서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였습니다. 엊그제 잠깐 우박이 떨어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남극 대륙과 열대 지방 중간에 위치한 남위 40도대는 지구의 감정 변화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구간입니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봄볕을 맞으니 북섬에서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어떤 일이 해결되는 시기에 맞춰 남섬으로 내려갈 생각이에요. '가족과 친구'라는 안전지대 밖으로 나온 지도 반년이 되었습니다. 한 달 뒤에는 제가 돌아올 줄 알았던 어머니는 늘 '그만하고 돌아오라'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제야 무언가를 시작한 것 같은 저로서는 이 모험을 중단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가족의 보호가 존재한다는 건 말도 못 할 행운입니다. 집을 떠나와 방랑객으로 푸대접을 받을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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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배우는 것들
2018년 9월 3일 월요일 한국은 조금씩 긴 팔 옷을 꺼내 입을 날씨가 되었겠네요. 이곳은 봄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사나운 날씨가 연일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폭설이 내리고 중부 지역에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요. 제가 있는 북쪽에는 강한 돌풍과 함께 집중호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역시 대자연의 나라답게 구월의 봄을 향한 환영 인사도 투박하고 거친가 봅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오다가 오후 네 시가 다 되어서야 강한 햇볕이 났습니다. 빛은 밤부터 얼어 있던 나무 울타리와 흙을 순간적으로 데운 뒤, 아지랑이를 부둥켜안고 흩어집니다. 시간에 형상이 있다면 이러한 모습일까요. 날씨가 좋지 않지만 숲 산책을 멈추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집 앞의 숲을 둘러보는데 아직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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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과 빛 한 줌이 삶에 미치는 영향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내게 잘 맞는 루틴 찾기 아침이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에 가장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책에는 이른 새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작업 시간을 아침으로 옮기고 기적적으로 능률이 올랐다는 것, 잠을 자는 동안 뇌가 기억 분류 작업을 끝내놓아서 지난 밤에 고민하던 문제가 갑자기 해결이 되었다는 것, 등등 증명 가능한 경험과 이론들로 가득 했습니다. 나에게 맞는 이상적인 시간대를 찾기 위해 이리 저리 실험해보고 있는 중이었기에 몇 번은 일어나자마자 만사 제쳐두고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작업을 먼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썩 몰입되지 않고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했어요. 아침 기운은 언제나 좋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기분'은 어디서 생겨난 것이었을까요. ..
Travel 기록자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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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나빌리(Navigli),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 6선
숙소가 있는 장소는 여행의 전체적인 톤을 형성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새벽까지, 하루의 모든 시간대를 깊숙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와 워케이션이 시작된 첫 주를 밀라노에서 보냈다. 그중에 숙소로 택한 곳은 나빌리오 운하를 품은 동네 '나빌리(Navigli)'. 이곳은 12세기 중세부터 산업혁명 시대까지 밀라노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던 역사적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수로를 따라 형성된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붙잡는다. 겨울이 찾아온 밀라노에 머무는 일주일 중 절반은 비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덕분에 비밀스러운 꿈처럼 밀라노를 즐겼다. 카페와 레스토랑, 레코드샵까지 이 도시를 훑으며 기억에 남았던 6곳을 소개해본다. 1. 카페 나폴리(Caff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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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맛집∙기념품∙가볼곳] 시부야 산책 코스 추천! 여유로운 자연과 번화가를 동시에 즐기는 법
한국보다 겨울이 한 발 늦은 도쿄에서 미처 누리지 못한 가을 정취를 눈에 담는다. 일본에 서너 번 와 본 게 전부 봄과 여름뿐이라 도쿄의 늦가을-초겨울 풍경은 처음이다. 바쁜 틈새로 연말에 마련한 2022년의 휴가. 예전에 오랜 친구와 도쿄에 처음 왔었다. 그때는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방식으로 일본을 처음 만끽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친구가 결혼 소식을 들려줄 때쯤 나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 각자의 길을 갔고, 주말에 근무하는 일을 할 때라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의 타이밍이 엇갈리다가 우리는 영영 먼 사이가 되었다. 친구와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었던 도쿄. 그래서 그동안 도쿄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언가 저릿해졌다. 휑하니 사라진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나 지금 어디게!" "도-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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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카페] 후글렌(Fuglen), 커피를 물고 일본으로 날아든 노르웨이 새
시부야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햇볕이 들지 않는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한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5시간 스탠딩 공연을 만끽한 MUTEK TOKYO의 여파가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이번 도쿄 여행의 목적은 MUTEK을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낮 시간은 도쿄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쓰기로 했다. ▼ MUTEK TOKYO 2022 후기 다시 읽기! [공연] 일렉트로닉,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MUTEK JP 뮤텍 도쿄 2022 (1) 시간은 평평한 모래사장입니다. 어느 한 곳에 빈 구덩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모래를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 모래 알갱이와 바닷물이 뒤섞여 다시 원래 상태로 되 www.privateparadise.org [공연] 일렉트로닉, 생각의 경계를 허물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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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실패 없는 경주 가족여행지 (2) - 동궁과 월지 : 보름달이 뜬 밤, 우리는 오랜 정원을 거닙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중에서도 '자연'은 인간이 태초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예술의 원형이 된다. 무언가에 감탄을 했다면 곧 그것들을 곁에 두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른다. 사람은 물론,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아름답게 자라난 초목, 깊은 산 중에 만났던 동물까지도. 온 가족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맞이하는 추석날 밤, 100년 만에 가장 크고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놓치기에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소중하다. 수많은 인파를 예상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경주다운 곳에서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자는 제안에 가족 모두가 찬성했다. 목적지는 경주 야경 명소로 유명한 .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공평하게 무작위 재생을 하며 야간 드라이브를 나섰다. 경주 하동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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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실패 없는 경주 가족여행지 (1) - 스테레오의 낙원,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어떤 취향들은 유전자를 타고 내려온다. 특정한 분야에 유난히 끌릴 수 있는 마음은 내 몸과 함께 이미 생성되어 있는 것이다. 적절한 환경과 우연한 기회를 만나면서 개인의 취향은 보다 다양하고 깊어진다. 내게도 그렇게 형성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진, 다이어리, 음악, 그리고 풀. 글쓰기와 사진은 스스로 기른 취향에 가깝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풀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전해져 온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 특별한 기억 덩어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떠오르는 장면은 수 십 권 쌓여 있던 잡지들. 음악과 음향은 아버지가 가장 큰 애착을 가진 분야이자 딸과 소통하는 멋진 수단이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내뿜는 열정이 어린 마음에도 그대로 느껴져서 '음악은 그 자체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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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숙소] 2박 3일간의 치유 - 경주 하동 민속공예촌 속 넓은 정원이 있는 황토 토담집
"아빠는 어디 안 나가도 된다. 이 집에만 있어도 참 좋다." 오랫동안 바다 위에서 지냈던 아버지에게 흙내음이 풍부한 경주의 황토집은 그 자체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인가 보다. 여러 가지 일들로 매일을 꽉 채워 보내는 저에게도 자연 가까이에서 추석 연휴의 빈 시간을 만끽하는 것은 참으로 소박한 사치다. 폐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에게 이곳의 맑은 공기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추석 연휴, 우리 가족이 꼭 필요했던 휴식을 선물해 준 경주 하동의 민속공예촌 속 황토 토담집을 소개한다. 담소를 나누기에도, 글을 쓰기에도 완벽한 정원 큰 길을 벗어나 공예촌이 있는 고즈넉한 동네로 들어선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 숙소 앞 건물에서 공예품을 판매하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사장님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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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첫 가족여행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집단이 있다.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와 유사한 그룹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작은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개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피와 시간을 나눈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역할과 상호 간 약속을 정한다. 각자의 습관에 물들기도 하고, 불편한 점들이 있다면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고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간다. 운이 좋다면 가족 구성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연장되어 가족의 울타리에서 세상 바깥으로 자신의 영역을 무사히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등과 타협(혹은 비타협)의 터널을 지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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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카페/물금카페] 사람과 마을을 생각하는 바른 카페, 소소서원
가족 일이 있어 양산에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카페 한 곳에 들렀다. 낯선 카페는 그 자체로 여행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마침 노트북도 챙겼으니 글도 쓰고 밀린 작업을 정리하고 싶었다. 집에 오기 전 다른 곳에 들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라 커피 맛은 물론이고 특별한 공간에 머물렀으면 했다. 그러다 물금에 있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좋아하는 카페 브랜드의 바리스타 한 분이 소소서원 카페 계정을 팔로우를 하고 있어 왠지 더욱 신뢰가 갔다. 카페 그 이상의 공간과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곳, 양산 물금 카페 을 소개한다. 소소서원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신주5길 4-13 영업시간 : 화-일 10:00 ~ 21:30 평일 오후 3시, 조용할 거라 생각했던 외곽의 카페는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다..
Life 기록자의 일상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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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확신할 것인가
2024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나에게 이번 1월은 '2025년 마이너스 12월'의 개념에 더 가깝다. 삶의 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졌으므로 회사일 이외의 거의 모든 시간이 새로운 미래로 향해 있다. 사랑과 삶의 가치를 한 군데로 모을 수 있어 폭발적인 집중을 만든다. 좁고 한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사막과 바다처럼 막막할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인생을 마주할 때 나에게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마침 그 세계를 함께 바라봐주는 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내 인생은 책과 글에 바짝 붙어 있다. 그 말은 책상 앞에서 비정상적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책과 글은 보통 타인과 함께하기보다는 혼자만의 영역이라, 이런 특성 덕분에 홀로 있는 시간을 외로움이나 고통 없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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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잘 흘러가고 있다
2023년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해였다. 아직 12월이 남아있지만, 분명 남은 한 달도 꽉 채워 지낼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자신에게 격려를 건네고 싶다. 창업 수업이 끝나고, 내가 전력을 다하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히 하는 시간을 보냈다. 외국을 삶의 터전으로 둘 예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제적인 웹페이지를 구축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chaelinjane.com" 웹페이지를 발행해 일기와 기록을 테마로 사적인 파라다이스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주말은 워드프레스를 공부하고 홈 화면과 포스팅 규칙들을 정립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역대급 생리통을 겪으면서도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정말로 재미가 있어서 이걸 계속 붙잡고 있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워드프레스가 공부하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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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고립'으로부터 시작하는 독립 생활
독립, 온전한 인간이 되는 연습 서울 생활 4개월 차.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동안 낯선 분야의 일을 익혔고, 막막했던 첫 장거리 연애는 안정 궤도에 올랐다. 매일 회사일, 외국어 공부, 제2의 삶을 위한 공부, 독서, 글쓰기, 집안일에 전념하며 지낸다. 요리와 자잘한 집안일은 독립생활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내 몸과 터전을 직접 돌보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을 일깨워주니까. 아기새가 야생에서 먹이를 찾고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은 독립을 통해 생물로서의 본성을 회복한다. 첫 서울생활을 시작한 3월, 이곳의 생활 물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립을 시작하자마자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세웠다. '수입의 50% 저축'이 목표다.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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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체크리스트! 전월세집, 구하기 전에 ◦◦◦◦부터 명확히
학업, 취업,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한다. 앞으로 살아갈 동네와 집을 아주 신중하게 선택한다.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집을 구하고 당일날 이사까지 마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요! 빠른 속도로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간단한 방법을 시험해 본 날이었다. (물론 그때를 생각하면... 피로감이 무진장 몰려오지만.) 세상 일은 어쩌면 그렇게까지 오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빠른 결정 뒤에 후회도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번갯불처럼 집을 구해야 했을까? 2월 17일 귀국, 2월 27일 이사, 그리고 3월 3일 첫 출근. 꽤 촉박한 일정이었다. 이사 갈 집은 친한 언니가 살던 곳. 새로운 동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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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풀려나온 실오라기
어느덧 이성적인 사고가 감정을 이겨내는 시간이 찾아왔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논리보다는 감정을, 치밀한 계획보다는 우연의 낭만을 사랑하는 성질이 만연한 INFP에게 이러한 변화는 유전자를 바꾸는 일이나 다름없다. 본성의 반대편에 서 보겠다는 의지는 1994년 영화 의 여주인공 '테리'를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녀의 태도가 그때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참을 수 없는 동경이 싹트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양한 고난 속에서 테리의 태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예민함과 불안을 타고났기에 평생 명상과 운동으로 수양이 필요하지만, 10여 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은 그래도 어린 채린보다는 테리 쪽으로 많이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그마한 발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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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날의 푸념
살다 보면 연속된 일련의 날씨가 나의 상황과 기분에 꼭 들어맞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밤까지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린다. 전날 골라온 두 권의 책이 그동안의 활자 욕구를 모조리 채워줬다. 비구름이 실타래 같은 수분을 엮어 햇살을 단단히 가려준 덕분에 일요일다운 단잠도 중간중간 잘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컨디션 관리하며 보냈던 나날들도 환절기 무렵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3일 내리 쉬었던 연휴 때문에 긴장이 풀린 까닭인지, 주말에 동틀 무렵의 하늘을 보며 귀가한 탓인지 이맘때쯤 찾아오는 감기 몸살에 꽤나 고생이다. 여성의 몸이 가장 예민해지는 시기도 함께 찾아왔다. 꾸준한 운동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 해답일 뿐이고, 평소에 잠을 푹 자면 피로가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6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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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탈출, 저녁 식사 전 운동으로 새 습관 다지기
태생이 꾸준하지 못한 사람? 예전에 재미로 본 사주와 성격 분석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해석이 나왔던 적이 있다. 내게는 하늘 높이 솟은 나무 세 그루가 있다고 한다. 쭉쭉 뻗는 나무처럼 시작하는 에너지는 강한데 그만큼 끝 마무리를 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맞는 말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내가 특별히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고, 자책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운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은 무언가 가 되지 않으면 심한 자책 대신 '내가 그냥 이런 성질로 태어나서 힘들어하는 거구나' 하고 최대한 가볍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많은 일들 중 특히 ‘운동’은 시작조차 어려운 영역이었다. 잘 안 되고, 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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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를 기록하다(코로나 검사, 징후, 증상, 복용약, 자가격리)
방에 누워 있습니다. 최근에 구매한 베개는 볼륨이 빵빵해 조금 불편한데 다른 베개의 가장자리와 겹치면 이상하리만큼 제 몸에 꼭 필요했던 각도가 나오네요. 지난밤에도 고개가 살짝 뒤로 젖히는 자세로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서 눈꺼풀과 두 뺨, 코 끝, 입술 위로 차가운 공기가 덮입니다. 방 안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찬바람에 계속 닿을 수 있어 절반은 야외에 나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동안 집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는 '창문을 마음대로 열 수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공간 넓이의 문제인 줄 알고 제 방은 잠자는 공간으로만 여겼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모두 거실에서 했지요. 넓은 대리석 식탁에서도 숨 막힘을 느낀 것은 그저 제가 실내에 ..
Things 기록자의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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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책, 다이어리, 랩탑, 카메라 수납까지 가능한 가방 - 세일러즈 워커백 M
"와... 언니, 가방에 뭐가 들어 있으면 이런 거야...?" "몰랐어? 쟤 가방에 망치 들고 다니잖아!"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나에게 놀림이 한가득 쏟아진다. 랩탑, 가끔 아이패드, 다이어리, 필통, 책, 카메라, 배터리, 어뎁터, 가끔 렌즈도 한 두 개. 하도 이고 지고 다니는 탓에 '당나귀'라는 별명도 얻었다. 어느날 갑자기 무거운 가방을 들기로 작정한 건 아니다. 자주 쓰는 물건들이 시나브로 조금씩 많아졌을 뿐. 그래서 나에게 '가방 들어준다'는 호의를 함부로 베풀면 곤란하다. 덤벨 대신 운동이 될 만한 걸 찾는 사람이 아닌 이상 호의가 후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피가 안 통하는 손가락은 덤🥲) 어지간하면 물건을 다 들고 다니게 된 이유가 있다. 고민 끝에 어떤 물건을 빼놓고 오면, 무슨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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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내가 사랑하는 필름/수동 렌즈들(후지논, 올림푸스, 7장인)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카메라 '후지필름 X-Pro 2'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X-Pro 2 미러리스 카메라에 기대했던 부분은 의 역할이었고, 지금까지 크게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MF모드로 사용할 때는 초점이 맞는 부분을 색깔(보통 붉은색)로 표시해주는 '포커스 피킹' 기능이 매우 유용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렌즈는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필름 렌즈 두 개와 특별한 렌즈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1. 인생의 큰 모험을 함께 하는 Fujinon 후지논 EBC 135mm f3.5 2018년초에 리얼 렌즈에서 구매한 후지논 준망원 렌즈다. 아래 부분에 M42-FX 마운트 어댑터가 있어 렌즈가 훨씬 길어 보인다. APS-C 크롭 바디에서는 200mm의 화각이 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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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디지털로 담아내는 필름 사진, 후지필름 Fujifilm X-Pro 2
2016년, 나는 운명처럼 후지필름 X-Pro 2를 만났다. 이 카메라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처음 샀을 때나 지금까지나 변함이 없다. 바로 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클래식한 외형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나 근사하다. 약간의 첨단 기능이 가미된 필름 카메라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 당시 X-Pro 2 바디와 표준 렌즈(XF35mmF2)를 같이 구매하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 비용에는 앞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필름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만큼 매력적인 카메라다. 아래 두 가지는 내가 이 카메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피사체를 직접 바라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멀티 뷰파인더 X-Pro 2에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기분이 드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전자식(EVF, Electronic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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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2021 맥북프로(MacBook Pro) 14인치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프로 - 애플과 함께 성장하다 저는 아이폰 6로 처음 애플 생태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보안성, 카메라, 디스플레이, 디자인의 이유로 저는 애플로 옮겨 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애플 디스플레이가 흰색을 가장 흰색답게 표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아이폰 11을 쓰고 있어요.) 2년 전에는 생일 무렵 친한 디자이너 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날로그로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기록들을 디지털로도 해보면 어때? 종이에 그리듯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아이패드로 손글씨도 써보고! 기록을 이미지로 만드는 거지." 당시 9만 원짜리 와콤 태블릿을 써오면서 굉장한 불편을 느끼고 있던 저는 화면에 보다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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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한 달 일찍 시작하는 새해, 2022년 다이어리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
10년이 넘게 이어오는 저만의 작은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12월부터 새로운 다이어리를 시작한다」는 것.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부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은 저는 어렸을 때부터 12월이면 한 달 내내 은은한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덕분에 12월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 되었고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연도와 관계없이 저의 일기년(日記年)은 12월 1일부터 시작해 이듬해 11월 30일 날 끝나는 주기를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12월에 다이어리를 시작하면 좋은 점 1. 한 달 일찍 누르는 RESET 버튼 내년의 계획이나 다짐을 한 달 일찍 고민할 수 있습니다. 새 다이어리의 텅 빈 페이지가 주는 고요함을 마주하면 얼른 채워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