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첫 가족여행

2022. 10. 19. 00:0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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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집단이 있다.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와 유사한 그룹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작은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개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피와 시간을 나눈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역할과 상호 간 약속을 정한다. 각자의 습관에 물들기도 하고, 불편한 점들이 있다면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고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간다. 운이 좋다면 가족 구성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연장되어 가족의 울타리에서 세상 바깥으로 자신의 영역을 무사히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등과 타협(혹은 비타협)의 터널을 지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능적이고 간단한 일들이 인간 세계에 들어오면 복잡해진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을 하시고 지난 7월 은퇴를 하셨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후로 온가족이 함께 첫 명절을 맞이한다. 마침 다른 친척들도 각자 가족끼리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우리도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셋이서만 오붓하게 떠나는 경주 여행. 어른이 되고 나서는 완전체로 떠나는 첫 국내여행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알아보다가 넓은 마당이 있는 황토집을 발견했다. 휘황찬란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보자마자 '여기다!' 하는 직감이 들었다. 인파로부터 멀어져 우리 가족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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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은 아직 신혼부부처럼 갈등에 취약하다. 서로가 없는 시간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한국에 6개월 정도 휴가를 나오시면 늘 어떤 이유로든 두 분이 중간에 크게 다툴 일이 생긴다. 서로 다르게 쌓아온 생활 방식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가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다시 복귀하시기 전 느슨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다시 엄마와 나만 남는 게 오랫동안 반복되던 패턴이었다.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응어리는 세월이 지나면서 닳고 더욱 딱딱하게 굳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나는 늘 이런 패턴이 안타까웠다. 거기에다 나 또한 엄마와 만만찮은 갈등을 안고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마치 꼬여버린 거대한 실뭉치와 다름없었다. 정말로 따뜻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들.

    이 낯선 가족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왠지 처음 느껴보는 평온함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솔직해졌을까. 실뭉치에 둘러싸인 모호함을 깨트리고 우리는 각자가 바라는 행복으로 흘러갈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한 경주 여행이 저에게는 사실 '독립의 서막'이었다는 걸 떠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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