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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의 도구] 디지털로 담아내는 필름 사진, 후지필름 Fujifilm X-Pro 2
2016년, 나는 운명처럼 후지필름 X-Pro 2를 만났다. 이 카메라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처음 샀을 때나 지금까지나 변함이 없다. 바로 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클래식한 외형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나 근사하다. 약간의 첨단 기능이 가미된 필름 카메라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 당시 X-Pro 2 바디와 표준 렌즈(XF35mmF2)를 같이 구매하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 비용에는 앞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필름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만큼 매력적인 카메라다. 아래 두 가지는 내가 이 카메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피사체를 직접 바라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멀티 뷰파인더 X-Pro 2에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기분이 드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전자식(EVF, Electronic Vi..
2022.03.26 -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삶을 선명하게 바라볼 기회가 되다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삶의 작은 피정(retreat)을 떠날 기회입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빗방울이 창문에 후드득 떨어진다. 자동차들이 빗물을 머금은 도로를 지나간다. 집 안의 모든 조명과 음악도 다 끄고서 침대에 누워 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연 상태'의 행복이다. 최근에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 봤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거의 몇 년간 내게 없었던 감각이란 걸 깨달았다. 문득 뉴질랜드의 명상 센터에 있던 2019년 3월이 생각났다. 10일간 깊은 숲 속에서 '노블 사일런스(Noble Silence)'라고 불리는 완전한 침묵 속에 존재했던 날들이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엄마가 병원에서 안전하게 격리 생활을 보내는 동안 나는 혼자 명상 센터에 있는 것처럼 온전한 정적..
2022.03.22 -
[기록자의 도구] 2021 맥북프로(MacBook Pro) 14인치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프로 - 애플과 함께 성장하다 저는 아이폰 6로 처음 애플 생태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보안성, 카메라, 디스플레이, 디자인의 이유로 저는 애플로 옮겨 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애플 디스플레이가 흰색을 가장 흰색답게 표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아이폰 11을 쓰고 있어요.) 2년 전에는 생일 무렵 친한 디자이너 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날로그로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기록들을 디지털로도 해보면 어때? 종이에 그리듯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아이패드로 손글씨도 써보고! 기록을 이미지로 만드는 거지." 당시 9만 원짜리 와콤 태블릿을 써오면서 굉장한 불편을 느끼고 있던 저는 화면에 보다 직접..
2022.03.17 -
사진을 잘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감독의 영화
우리는 글이나 회화, 데생을 통해 세상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비해 전자의 결과물은 실제와 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백지에서 작가의 노력에 의해 글자와 물감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생각이나 의식이 완전하게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일 때,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사진의 조작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진이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정도가 글이나 그림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증거 자료로 활용되며 본인 확인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진이 충실히 이 세상만을 반영하기만 할까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100..
2022.03.13 -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록하다(코로나 검사, 징후, 증상, 복용약, 자가격리)
방에 누워 있습니다. 최근에 구매한 베개는 볼륨이 빵빵해 조금 불편한데 다른 베개의 가장자리와 겹치면 이상하리만큼 제 몸에 꼭 필요했던 각도가 나오네요. 지난밤에도 고개가 살짝 뒤로 젖히는 자세로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서 눈꺼풀과 두 뺨, 코 끝, 입술 위로 차가운 공기가 덮입니다. 방 안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찬바람에 계속 닿을 수 있어 절반은 야외에 나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동안 집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는 '창문을 마음대로 열 수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공간 넓이의 문제인 줄 알고 제 방은 잠자는 공간으로만 여겼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모두 거실에서 했지요. 넓은 대리석 식탁에서도 숨 막힘을 느낀 것은 그저 제가 실내에 ..
2022.03.10 -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2011) - 감각 상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백신 1차 접종 후 5개월 만에 2차 접종을 맞았다. 그동안 (아마도 백신 때문에)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겼고 해를 넘기고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치료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다음 백신을 맞을 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5일간의 긴 명절 휴가를 2차 접종 회복 기간으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1차 때 몸이 혹독한 상황을 겪은 뒤였고, 2차 때 그 증상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5일의 공백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다른 무언가를 하기에도 너무나 달콤한 기회였지만 더 큰 사회적 자유를 위해서 희생을 감내하기로 했다. 여행 대신 집 앞을 산책하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나를 초월한 이 지겨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절묘하게 맞는 영화..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