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삶을 선명하게 바라볼 기회가 되다

2022. 3. 22. 23:30Works

반응형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삶의 작은 피정(retreat)을 떠날 기회입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빗방울이 창문에 후드득 떨어진다. 자동차들이 빗물을 머금은 도로를 지나간다. 집 안의 모든 조명과 음악도 다 끄고서 침대에 누워 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연 상태'의 행복이다. 최근에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 봤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거의 몇 년간 내게 없었던 감각이란 걸 깨달았다. 문득 뉴질랜드의 명상 센터에 있던 2019년 3월이 생각났다. 10일간 깊은 숲 속에서 '노블 사일런스(Noble Silence)'라고 불리는 완전한 침묵 속에 존재했던 날들이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엄마가 병원에서 안전하게 격리 생활을 보내는 동안 나는 혼자 명상 센터에 있는 것처럼 온전한 정적을 경험했다. 다른 점이라면 이곳은 도시의 한가운데라는 것, 규율에 의해 생성된 침묵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조성한 정적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영어 단어 중 retreat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후퇴, 도피 등을 의미하지만 '평상시의 생활에서 벗어나서 갈 수 있는 조용한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피정(가톨릭에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 '수행'을 뜻하기도 한다. 코로나 확진으로 집에서 격리 생활을 보내는 동안 평소에 시간이 없어 지속할 수 없었던 고민과 통찰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늘 똑같은 집과 방 안이었지만, 시간을 평소와 다르게 사용하는 덕분에 작은 여행을 떠난 것 같기도 했다.

    코로나를 앓은 이후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격리 기간 동안의 생각 정리로 현실 세계에 더욱 밀착한 기분이 든다. 흐려졌던 후각과 미각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미세한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격리 생활 중에 영화 <퍼펙트 센스(2011)>가 계속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감각이 사라지는 불행에 절망하기 보다, 남아 있는 감각에 집중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도 격리 생활의 답답함과 불편함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몸 상태가 엉망이니 꼭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은 할 수가 없어서 오히려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들에 미련 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덕분에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탐구할 수 있었다.


- 내가 정말로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가?
- 지금은 회사를 위한 시간도 겨우 할애하고 있는 내가 또 다른 일까지 감당할 컨디션이 되는가?
- 새로운 일들을 거부하려는 감정을 신뢰해도 되는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감정으로 달래야 하는가?
- 정말 원하는 삶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거부감을 기를 쓰고 이겨내야 하는가?

 

ⓒ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객관적인 판단에 도움을 얻기 위해 이미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나의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관련된 수많은 책과 인터뷰 영상 등을 참고했다. '이 사람들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생각하며. 현재 내 삶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욕망은 경제적 자유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자유로운 시간 운용을 바탕으로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파는 노동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선택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주요 수단으로 내가 가진 유일한 기능인 기록을 사용할 계획이다. 유일하지만 그 기능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지속하며 연마할 생각이다. 좋아하는 일이니 평생을 지속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보니 공부해야 할 분야가 눈에 보였고 격리 기간 동안 그 탐구를 원없이 이어갔다. 투잡, 쓰리잡, 포잡은 당연히 힘든 일이다. 나는 회사일 외에 상업 사진, 예술 사진, 번역, 글쓰기 등으로 기타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컨디션 조절도 잘 해내야 한다. 어쨌든 노동을 하기로 계약이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성실해야 하니까. 적당히 할까?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내가 진실로 원한다면, 바라는 일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며 다 해낼 수 있다>는 태도로 무장하기로 다시 마음을 정했다. 뭐든 다 해낼 수 있다! 사실 이건 작년의 마음가짐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니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들어서 올해 초에 '무리하지 말자'로 자신을 달랜 상태였다. 세 달 만에 태도를 다시 번복한 이유는 현재 레벨에서 겪는 고충을 따르기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더욱 신뢰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회피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삶이 근처에 있기에 이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보면 시간이 흘러 현재의 어려움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한계를 넘어서야 원하는 삶에 더욱 가까이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 힘들기로 마음먹은 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과물을 내볼 때까지 참고 힘을 내보기로 결심했다.

    "100% 전념"의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니 오히려 1분 1초가 내 편이 되어 천천히 흘러간다는 착각이 든다. 건강이 무너질 때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작년에 너무나 제대로 경험했기 때문에 '아침 명상''저녁 교정 운동/필라테스/요가/걷기', '잠은 충분히 자기'를 새로운 규칙으로 삼았다. 새로운 사이클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 일상에 자리를 잡으면 이에 관해 기록해볼 예정이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20대 중반부터 절대 놓지 않던 인스타그램을 요즘은 자연스레 멀리하고 있는 중이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큰 것 같다. 인스타그램은 너무나 쉽게 눈앞에 타인의 삶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한두 명의 삶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지인, 인친들과 그밖에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보름 정도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니 그동안 실시간으로 빼앗겨왔던 시간과 관심의 분량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고 있다.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대신 내가 꼭 해결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3월 내내 태도를 결정할 현명한 마음가짐을 탐구해보길 잘한 것 같다. 좋아하는 분야의 일마저 억지로 하기는 싫어서 그 무리하려는 마음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억지로'가 만들어내는 어정쩡한 고통이 아닌, '몰입과 전념'이라는 방식은 일과 작업에 있어서 치트키나 다름없다. 부정적인 흐름에 휩쓸려 아등바등 하는 것과 긍정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을 이용해 그동안 삶에 꼭 필요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충분히 잠을 자며 강렬하게 쉬었고, 바라는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점검하고 공부했다. 덕분에 코로나를 벗어나니 이전보다 더욱 반짝이는 에너지로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순간을 축복으로 만들어보자. 자가격리 기간이 삶을 돌아보는 피정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