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첫캠핑, Opoutere Coastal Camping

2018. 8. 1. 12:3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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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4일 토요일 - 15일 일요일

어렸을 때부터 물이 닿은 흙과 돌 냄새를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베란다에서 분갈이를 한다고 화분의 흙을 갈아엎을 때 거실에서 학습지를 풀며 가득한 흙냄새를 맡았던 기억, 돌이끼에 분무기로 물을 뿌릴 때마다 신기루처럼 나타나던 향기, 뒷산 편백나무 숲길을 걸을 때의 상쾌한 공기, 이사 간 후에는 비가 온 직후에나 집 앞의 산책로에서 겨우 맡을 수 있었던 그 향기입니다. 엄마 뱃속이 이미 푸른 숲이었는지 나는 자꾸만 그 공기를 편안히 여기고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지금, 한국에서보다 그 냄새를 더 자주 맡을 수 있는 곳에 와 있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비가 내리고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에 창문을 열면 ─ 농도 짙은 공기가 풀어진 비단처럼 방 안으로 부드럽게 밀려 들어옵니다. 조금은 무서운 꿈을 꾸고 눈을 떠도 망각의 레테 강가에서 그 공기를 들이마시듯 잊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의 도시 공기도 이런데, 태고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도대체 얼마나 감미로울까요.

토요일 오후, 트레이드 미에서 800달러 주고 어느 멋쟁이 할아버지에게서 구매한 SUP를 받고서 캠핑장이 있는 Opoutere(발음은 '오포우트리'에 가까움)로 향했습니다. 금요일에 미리 예약을 한 캠핑장이었어요. 두 시간이 넘는 운전길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구간을 지나 더욱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더니, 지도는 데이터도 닿지 않는 야생 속으로 안내했습니다. 곧 울창한 나무 아래로 'Opoutere Coastal Camping'이라 적힌 푯말이 나왔어요.

 

 

 

Opoutere 캠핑장 사이트맵 / ⓒ chaelinjane, 2018

  
사무실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 받았습니다. 샤워부스가 있는데 뜨거운 물은 1달러 동전을 넣어야 나온다고 하네요. 혹시 몰라서 10달러를 동전으로 교환했습니다. 정해진 자리가 있었지만, 스태프는 예약이 꽉 찬 게 아니라서 그냥 주변에 비어 있는 자리에 가도 된다고 안내해주었습니다.

Lower Camp 지역을 지나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배정받은 자리가 있는 Upper Camp 지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지도상에 별☆표가 되어 있는 부분에 화장실과 샤워실, 부엌, 세탁실이 갖춰져 있었어요. 이미 15번 자리에 어느 중년부부의 근사한 캠핑카 한 대와 18번 자리에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텐트 하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16A 자리였지만, 큰 나무 아래에 있는 17번 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그냥 그곳에 차를 세웠다. 이미 날이 늦어서 보드를 탈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숲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오포우티어 캠핑장
Opoutere Campling Grou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전기가 들어오는 자리에는 하얀 장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편함 같이 생긴 박스를 열면 콘센트가 들어 있어요. 해변과 가장 가까운 10A 자리에 잠시 주차를 해두었습니다.

 

Opoutere Camping Grou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숲이 더욱 짙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깊은 산중에 있기가 쉽지 않은데, 제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그 진한 향기들이 사방에서 풍겨져 나왔습니다. 단언컨대, 이 공기야 말로 저에게는 마음껏 복용해도 부작용 없고 누가 잡아가지도 않는, 최고의 환각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Opoutere Camping Grou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주말이 되면 무리와이나 오레와 해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이곳은 주말인데도 무척 한적했습니다. 산책 중인 노부부와 바다에서 막 나온 서퍼,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네 명만 있었다. 다음 날 마주친 또 다른 호주 출신 서퍼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곳은 늘 이렇게 한적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서프 스팟 중 한 곳이라고 합니다. 안개와 비구름에 가려져 있어 이 해변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저녁 일곱 시도 안 되었는데 어둠이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루카가 함께 줬던 요리 도구들을 한 번 씻고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주방에는 토스터, 냉장고, 가스레인지, 싱크대, 워터포트, 등등 없는 게 없었지요. 도시의 부엌을 그대로 떼다 놓은 것처럼 완벽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재료를 제대로 챙기는 건데, 급한 대로 챙겨 온 라면 두 봉지와 토스트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인도미에서 나온 국물 있는 매기라면은 어찌나 제 입맛에 안 맞던지, 시설부터 공기까지 모든 게 완벽한 이곳에서 저녁은 아쉽게도 실패였네요. 애써 사온 스파클링 와인도 달기보다는 시큼한 맛이 강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고이고이 접어 위장 저 아래로 숨겨야겠습니다. 아쉽지만 미각이 만족하는 식사는 다음 캠핑 때 기대해보기로 합니다.

 

채린제인's Tip: 뉴질랜드 캠핑

뉴질랜드 캠핑장 가격대를 보면, 대략 (1인당) 무료 / $10 / $15-20 / $20 - ?? 정도로 나뉩니다. 무료 캠핑장은 공용화장실 하나만 주어진 경우가 많아요. 20달러 가까이하는 곳들은 큰 불편함 없이 마음껏 캠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10달러짜리 캠핑장이 스탠다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화장실, 샤워부스, 그릇 씻는 곳(부엌 아님! 조리도구 필요) 정도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지요. 'Campermate'라는 무료 앱을 추천합니다. 지도 위에 캠핑장, 숙소, 화장실, 덤프스테이션, 레스토랑, 식료품점, 주유소 등등이 표시되어 직관적으로 보기 편리합니다. 사용자들이 꽤나 솔직하게 적어 올린 리뷰도 함께 제공됩니다. 필터링을 통해 원하는 정보만 표시할 수 있어요.

 

Opoutere Camping Grou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밤 9시 55분, 차에 누워 왼쪽 차 문을 열어 놓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마 위로 숲의 숨이 내려앉았어요. 산 속인데 이상하리만큼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클랜드에 있는 집보다 덜 추운 것 같았어요. 머리만 차 바깥으로 내밀고 있으니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이 상태로 잠들고 싶었으나 그랬다면 밤새 모기들에게 강제 헌혈을 당했을 거예요. 아무리 맡아도 또 맡고 싶은 숲 공기는 이쯤에서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설정해둔 알람이 숲에서도 변함없이 울렸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차 문부터 열었어요. 어딘가에서 평온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자욱한 아침 안갯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어제저녁 3번 자리에 4인 가족이 도착했는데, 어린 두 아이들은 새벽부터 뛰어노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숲의 음향에 더해져 멋진 사운드를 만들어냈어요.

수트로 갈아입었습니다. 혼다 오디세이의 지붕에서 SUP 보드를 내렸는데, 예상은 했지만 역시 상상을 넘어서는 무게였어요. 원래는 패들이 함께 있어야 하지만 트레이드 미에서 따로 구매한 패들은 판매자가 연락을 늦게 줘서 오는 길에 픽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패들 없이 맨몸으로 새 보드를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다에 들어갔지만, 부피가 워낙 커서 다루기가 까다로웠습니다. 거센 파도가 계속 몰아쳐서 앞으로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지요. 별 수 없이 중심 잡는 연습만 계속했습니다. 저는 이것도 큰 훈련이었으니까요. 그때였습니다. 휴식이 필요해 물 밖을 나가려던 찰나, 해변에 있던 숏보더 서퍼가 갑자기 저를 향해 손으로 삼각뿔을 만들어 신호를 보냈습니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어요. 보통 '상어'가 나타났을 때 보내는 손짓이기 때문입니다. 해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같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와, 돌고래!"

거대한 파도를 따라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들이 파도 속으로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영상으로나 보던 걸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손짓을 보내던 서퍼는 보드를 들고 재빨리 바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숲을 뚫고 카메라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근질근질했지만, 돌고래들은 이미 해변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지개에 이어서 자연이 보내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네요. 비록 SUP는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박한 아침
Opoutere Camping Grou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꿀 바른 토스트, 바나나 하나, 커피 한 잔으로 소박한 브런치를 즐겼다. 함께 캠핑장에 있던 가족들이 다 떠나고, 남은 건 저 밖에 없었어다. 떠날 시간이 되자 이 숲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프리미엄 공기'가 무척 아쉬워졌습니다. 이거 뭐, 차에 한가득 실어갈 수도 없고. 1초라도 더 힘껏 들이마시는 수밖에요.

OPOUTERE BEACH COASTAL CAMPING

※ 온라인 예약 가격

  • 캐빈(최소 3일, 최대 인원 3명) $120
  • 캐빈(최소 4일, 최대 인원 4명) $160
  • 샬렛(최대 인원 5명) $200
  • 파워 사이트 캠핑 (최대 인원 8명) $19
  • 논-파워 사이트 캠핑(최대 인원 8명) $15

전기를 쓸 줄 알고 19달러짜리로 예약했지만,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산중이라 작업도 할 수 없어서 전기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하루 정도 소요되는 짧은 캠핑은 집에서 미리 배터리를 채워오면 되니까 전기 공급이 없는 곳에서 머무르기로 결심했어요.


해변과 연결된 캠핑장이라 더욱 특별했던 곳이었습니다. 다음 캠핑 때는 식재료도 잘 준비해서 제대로 된 '식후경'을 즐겨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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