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바다, 무리와이(Muriwai)

2018. 8. 1. 11:32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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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7일 토요일

 

첫 바다를 경험하다

  드디어 뉴질랜드에서의 첫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수요일에 도착해서 금요일까지 3일 동안 초기 정착 미션들을 클리어한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요. 도시를 벗어난 풍경을 담기 위해 '바다'로 향했습니다.

첫 숙소가 있었던 로열 오크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무리와이 비치(Muriwai Beach)가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짧은 주행 시간이었지만 예상외로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잘 닦인 도로의 한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구불구불 긴 산길을 통과하다가 멀미가 나서 거의 토하기 직전에 이르렀지요! 구사일생으로 산길을 좀 벗어나니 작은 슈퍼마켓이 나왔습니다. 바로 뛰어가 탄산을 들이켰네요.

채린제인's Tip: 뉴질랜드 운전

제일 처음 뉴질랜드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한국에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멘붕'을 겪습니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모든 기준이 운전자의 오른쪽이 됩니다. 차선을 셀 때도 오른쪽부터 1차선입니다. 추월차선도 당연히 오른쪽이고요. 다행히 페달이 반대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요! 장담하건대, 우회전을 할 때면 본인도 모르게 한국에서의 습관이 나와 몇 번은 반대쪽 차선으로 들어가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무조건 속도 준수! 도로 위에 차가 없어도 표지판에 70이 보이면 70, 50이 보이면 50으로 최대한 줄이면서 운전하세요. 한국에서보다 좀 더 차분하게 운전해도 괜찮으니 운전을 처음 배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익혀나가시길 바랍니다. 

노란색 중앙선을 찾지 마세요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산길을 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대부분 양 방향으로 차선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도시 근처에도 차선이 하나인 경우가 많지요. 뉴질랜드 도로에는 상황을 봐서 추월이 가능하도록 중앙선이 하얀 점선으로 된 곳이 많답니다. 

산길 운전한두 번 멀미를 하고 나면 뉴질랜드의 산길 드라이브에 꽤 익숙해집니다. (ㅎㅎㅎ) 운전하다 보면 도로 폭이 구간마다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도로 폭이 꽤 넓은 곳도 있고, 옆 차와 거의 닿을 정도로 좁은 구간도 나옵니다. 되도록이면 운전자 옆 차선인 오른쪽 차선에 기준을 두며 연습해보세요. 뉴질랜드에는 길거리 주차가 많아서 오른쪽 차선에 최대한 붙는다는 느낌으로 운전해야 주차된 차의 사이드미러와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산길에서 뒤에 차가 쌓인다고 무리한 속력으로 운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급하면 다들 알아서 추월해가거든요. 급격한 코너길이 많으니 속력을 충분히 줄이셔서 안전 운전하세요!

 

거의 마지막 산길을 달릴 즈음 눈앞에 불쑥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뉴질랜드의 첫 바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47km까지 펼쳐졌다는 해변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변이 47km라니요...? 이것이 대자연의 스케일인가 봅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다는 파도의 끝에 늘 빌딩들이 서 있었는데, 이곳에는 건물 대신 초록빛 자연이 눈에 보이는 바다만큼이나 더 펼쳐져 있습니다. 도시가 움켜쥐고 있는 바다와 자연이 움켜쥐고 있는 바다는 에너지 자체가 달라 보였습니다. 몇몇 서퍼들이 언덕 위에 서서 파도를 훑어보고 있길래 저도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무리와이 해변 도로
Muriwai Beach, Auckla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무리와이 해변
Muriwai Beach, Auckla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무리와이 서프 스쿨
Muriwai Surf School, Auckla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캠핑 의자를 해변에 설치해두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22℃가 넘는 날씨였지만, 바람이 워낙 세서 나시 티셔츠에 데님 셔츠를 입고 그 위로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하나 더 껴 입어야 했어요. 그런데도 전혀 덥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에 앉아 다이어리에 글을 썼습니다. 금세 종이가 눅눅해져서 볼펜 대신 연필로 기록을 이어나갔습니다. 계속 노트북 자판으로 글을 쓰다가 연필로 긴 글을 써 내려가니 손맛이 착착 감기는 게 기분이 짜릿했어요. 바람이 다이어리를 소매치기하려는 듯이 꽤나 여러 번 세게 불어댔지만, 종이를 꼭 붙잡고 기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록자'라고, 제 마음대로 지은 직함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리와이 해변의 모래는 이천 삼백만 년 전 폭발했던 고대 화산들로부터 나온 철이 함유되어 있어서 검은빛을 띠고 있습니다. 색깔 덕분에 이곳이 더욱 야성적이고 거칠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파도가 천천히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려가서 바다를 마주하니 착시 현상으로 느리게 보인 것일 뿐, 파도 하나에 실린 에너지가 무시무시했습니다. '강한 조류'와 '큰 파도'를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네요. 분명 내 앞에 있던 서퍼는 얼마 뒤 왼쪽의 절벽 근처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만큼 굉장한 힘을 가진 파도였어요.

 

해변을 산책 중인 사람들
Muriwai Beach, Auckla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이곳은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자 산책,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완벽한 장소입니다. 왼쪽에는 깎아 자른듯한 절벽이 있는데 8월부터 3월이면 가넷(Ganett, 비비새)의 서식지가 된다고 합니다. 해변의 뒤쪽으로는 마른풀들이 해풍을 따라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고 있습니다. 부티끄에 깔린 고급스러운 양탄자처럼 보이기도 해서 주위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는 일반인들을 죄다 화보 모델로 만들어줍니다. 변화무쌍한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태양의 스포트라이트도 정신없이 바뀝니다. 절벽 위 초원의 어느 작은 집을 비추는가 하면, 타스만 해 저 너머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비추기도 하고, 살짝 으슬으슬해질 쯤에는 잊지 않고 내가 앉아 있는 해변에도 햇살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껴 입고도 추운데, 비키니를 입고 몇 시간 동안 거뜬히 책을 읽고 있는 여인들은 실로 경이로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시선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브래지어까지 다 벗은 채로 누워서 낮잠을 자던 여인에게는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위풍당당한 자연과 그에 걸맞은 프라이드를 뽐내는 사람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꿈꾸던 삶과 동시에 건강한 자존감도 얻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5분'이 만드는 인생


 

'5분(five minutes)'이 만드는 인생

무리와이 서프 스쿨
Muriwai Beach, Auckland, New Zealand / ⓒ chaelinjane, 2018

 

무리와이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꽤 위험한 해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3년 2월에는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과다출혈로 오클랜드 단편 영화감독인 아담 스트랜지가 47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해요. 30년 만에 상어가 출몰했던 만큼 흔한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상어가 또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47km에 이르는 해변을 따라 그물을 설치하는 것도 비효율적이긴 한 것 같네요. 아직은 상어가 보이면 누구라도 먼저 신호를 보내주는 것 말고는 별 다른 조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공격이 1837년부터 (공식적으로) 15번 밖에 없었다는 통계에 의지하는 수밖에요.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마련입니다. 미리서 겁을 내면 인생을 어찌 충만하게 즐길 수 있을까요. 재수가 없으면 편히 앉아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유리 온실' 속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에 비해 지금의 저는 무척 안정적이고 편안해졌거든요. 상어를 만나거나 암초에 머리가 부딪혀 죽어도 상관없다는 서퍼들의 말이 예전에는 이해 전혀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도 모험 안에서는 최대한으로 안전해야지요. (제발!)

아담 스트랜지의 웹페이지에 쓰였던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잠깐의 순간이라도 충만하게 살려고 했던 그의 태도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 같아요.

"When I gent a spare five minutes, I like to make a fruit smoothy, surf some big waves out on the west coast, point my skis down a mountain with Meg, haul my mountain bike up and down a few hills, drink some Pinot while scratching away at a film script." 

─ Adam Strange

"만약 나에게 5분의 시간 여유가 있다면, 과일 스무디를 만들고, 웨스트 코스트의 큰 파도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산에서 스키를 타고, 산악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영화 대본을 쓰면서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다."

─ 아담 스트랜지


5분의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이 결국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5분이 5시간이 되고, 5시간이 5년이 되고, 5년이 50년이 되는 마법. 그 5분이 모여 나도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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