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3)
-
뉴질랜드 라글란에서 생일을 (2) ─ 마누베이 서핑과 중심가 산책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와나우 캠핑장의 아침 은은한 빛이 눈꺼풀에 닿습니다. 간밤에 꿈에서 봤던 물고기들이 머릿속을 희미하게 헤엄치고 다녔어요. 어, 이거 분명 길몽인데! 하늘이 생일 선물로 툭 던져 놓고 간 게 틀림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하니 잠에서 깨기도 전에 미소가 번졌어요. 생일은 하루 지났지만 이왕 주말에 낀 거 일요일까지만이라도 즐거운 기분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4월 초 오포우티어 캠핑 이후로 드디어 두 달 반 만에 야외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입니다. 오포우티어에서 피톤치드에 취해 아침부터 정말 기분이 좋았거든요. 여기서도 얼른 상쾌한 아침을 누려야겠습니다. 앞좌석에 놔둔 세면도구와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차 안의 공기가 새벽처럼 으슬으슬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2018.08.04 -
뉴질랜드 라글란에서 생일을 (1) ─ 캠핑 여행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처음으로 외국에서 맞이하는 생일 지난 토요일, 낯선 외국 땅에서 생일을 맞았습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네요. 하긴 두 달 전 제 일상을 전부 뒤엎은 것으로 매일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단순히 새 페이지가 아니라, 종이의 재질과 두께, 펜의 종류와 잉크마저 모두 바뀐─ 위에 있으니 딱히 더 새로울 게 없긴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별 수 없이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짜를 부여받았기에, 늘 똑같이 해가 뜨고 지더라도 그날만큼은 00시 00분과 23시 59분 사이의 시간 토막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되지요. 뉴질랜드에서의 6월 23일은 새로운 시간들 사이에서 작은 오름처럼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생일날 아침에 캠핑 짐을 싸기 전, 가족 카톡방에 장문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2018.08.03 -
일상이 동화가 되는 마법
2018년 4월 21일 토요일 살다 보면 현실 밖에 존재할 것만 같은 장면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거의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제게 그런 순간은 특별한 행운의 기회가 됩니다. 장면을 흘려 보낼지, 아니면 가로로 담아볼지, 세로로 담아볼지, 표준 렌즈로 담아볼지, 광각 렌즈로 담아볼지, 아니면 망원 렌즈로 무언가를 부각시킬 것인지, 어떤 주제에 초점을 맞출지, 감정이 어떤 장면에서 극대화될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레와에서 SUP 보드를 타고 나와 젖은 수트를 갈아입고 있는데 마침 무지개가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그냥 무지개가 아니라 쌍무지개! 뉴질랜드에 와서 한국에서는 몇 년 동안에 볼 무지개를 다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날 본 무지개 만큼..
2018.08.02 -
웰링턴 여행, 웰링턴 '출장'이 되다
2018년 6월 9일 토요일 웰링턴으로 웰링턴에서 일손이 급히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원래는 여행으로 계획했었다가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지원해준 비행기 티켓이 이메일로 날아왔어요. 수요일 오후 네 시 비행기였습니다. 그전까지 하던 글 작업을 모두 마무리해야 했어요. 마감시간이 코 앞에 찾아온 글 노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OO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를 떠나기 전날 발행했고, 여행 짐은 당일 날 아침에나 챙길 수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생각이 느린데 꾸물거릴 시간이 별로 없어서 평소보다 생각 회로를 몇 배속으로 가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웰링턴이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추운지 몰라서 껴입을 수 있는 얇은 겨울옷들을 배낭에 넉넉하게 챙겼습니다. 사실, 옷도 별로 없어서 ..
2018.08.01 -
와리 푸카푸카(Whare Pukapuka), 뉴질랜드 도서관 탐험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모험이라고 해서 항상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앉은 곳이 어디든 시공간을 단숨에 초월할 수 있는 모험이 있지요. 필요한 것은 언어 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여행비.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모험은 꽤 오래전에 우리의 기록 본능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바로 타인의 기록을 읽어내는 일, '독서'입니다. 한 달 동안 글을 쓰면서, 출력이 아닌 입력에 대한 강한 허기를 느꼈습니다.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하고 웹 상에 쓰인 타인의 기록들을 아무리 읽어도 좀처럼 허기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실물'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인쇄된 글자를 읽으며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제야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
2018.08.01 -
뉴질랜드 첫캠핑, Opoutere Coastal Camping
2018년 4월 14일 토요일 - 15일 일요일 어렸을 때부터 물이 닿은 흙과 돌 냄새를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베란다에서 분갈이를 한다고 화분의 흙을 갈아엎을 때 거실에서 학습지를 풀며 가득한 흙냄새를 맡았던 기억, 돌이끼에 분무기로 물을 뿌릴 때마다 신기루처럼 나타나던 향기, 뒷산 편백나무 숲길을 걸을 때의 상쾌한 공기, 이사 간 후에는 비가 온 직후에나 집 앞의 산책로에서 겨우 맡을 수 있었던 그 향기입니다. 엄마 뱃속이 이미 푸른 숲이었는지 나는 자꾸만 그 공기를 편안히 여기고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지금, 한국에서보다 그 냄새를 더 자주 맡을 수 있는 곳에 와 있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비가 내리고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에 창문을 열면 ─ 농도 짙은 공기가 풀어진 비단처럼 방 안으로 부드..
201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