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16)
-
[음악] 농밀하게 그려낸 정글 속 기타 사운드, FKJ - Greener (feat. Santana)
내가 추구하는 삶의 색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FKJ(French Kiwi Juice)"라고 대답할 수 있다. 최근 [Just Piano]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운드를 선사한 FKJ가 2022년 4월 8일 신곡을 공개했다.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산타나(Santana)와 함께. FKJ와 산타나, 이 두 사람의 합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곡의 첫 버전을 들은 FKJ 친구 한 명이 '리드 기타에서 산타나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단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FKJ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요. 산타나는 FKJ가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란 영웅이었으니까. 이를 계기로 산타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FKJ는 그를 향한 존경과 함께 곡에..
2022.04.09 -
사진을 잘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감독의 영화
우리는 글이나 회화, 데생을 통해 세상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비해 전자의 결과물은 실제와 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백지에서 작가의 노력에 의해 글자와 물감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생각이나 의식이 완전하게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일 때,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사진의 조작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진이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정도가 글이나 그림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증거 자료로 활용되며 본인 확인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진이 충실히 이 세상만을 반영하기만 할까요? 똑같은 사건을 두고 100..
2022.03.13 -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2011) - 감각 상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백신 1차 접종 후 5개월 만에 2차 접종을 맞았다. 그동안 (아마도 백신 때문에)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겼고 해를 넘기고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치료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다음 백신을 맞을 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5일간의 긴 명절 휴가를 2차 접종 회복 기간으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1차 때 몸이 혹독한 상황을 겪은 뒤였고, 2차 때 그 증상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5일의 공백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다른 무언가를 하기에도 너무나 달콤한 기회였지만 더 큰 사회적 자유를 위해서 희생을 감내하기로 했다. 여행 대신 집 앞을 산책하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나를 초월한 이 지겨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절묘하게 맞는 영화..
2022.03.05 -
[전시] 이미지와 글자로 만나는 사유의 세계, TIVSOY 개인전 <TIVOGRAPHY(티보그래피)> / 브루커피 부산 동래점
오랜 기간 독특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TIVSOY(곽현우) 작가님이 부산 브루 커피 동래점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자 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티보그래피(TIVOGRAPHY)'라는 명칭은 작가 이름의 앞부분(TIV)과 작품의 장르인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합성한 고유 명사입니다. 메인 포스터에는 1층에 전시되어 있던 「HIPHOP」 작품이 삽입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제목 없이 처음 보았을 때는 H와 P, 전원 스위치의 나열로 이루어진 이미지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원 스위치 버튼의 기호가 영어의 'I'와 'O'로 전환되는 순간, 머릿속에 '힙합'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처럼 티보그래피 작품들은 먼저 제목을 보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며 사유하고 ..
2022.02.20 -
[음악] 환한 빛으로 가득 찬 고요, Hammock의 "Silencia"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일상을 이어가야 할 때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지요.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는 없으니 엉망인 상태에서라도 최선의 결정과 행동을 이어나갑니다. 예민하고 여린 사람들은 벅찬 현실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도 감당해야 합니다. 심지의 가장 끝을 향해가는 초의 불꽃처럼 그렇게 번 아웃은 찾아옵니다. 요가와 비파사나(Vipassana, 위빳사나)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빈틈없는 스케줄 속에서 긴장과 집중을 이어가는 일이 상당한 피로와 시간 결핍을 가져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차단하며 일에 몰입했지만, 완전히 혼자 있는 순간에는 나의 민낯으로..
2022.02.19 -
[전시]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La Carte N'est Pas le Territoire) / MYOP / 부산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
해운대에 이사 온 지 8년이 다 되어 갑니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이 동네는 제가 평생 동안 살고 싶은 곳이라고 고백합니다. 바다, 숲, 요트경기장, 좋은 식당과 카페들, 그리고 고은사진미술관. 이 모든 것들을 걸어서 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올해 초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반가운 전시 소식을 듣고 첫날부터 찾아갔으나 엄격해진 백신 패스 적용으로 인해 문 앞에서 리플릿만 받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쉽게 찍는 백신 접종 완료 QR코드지만 제게는 시간과 돈, 건강을 잃으며 힘겹게 얻어낸 전리품입니다. 마침내 2차 접종 14일째,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바로 고은사진미술관이었습니다. 종종 피드에 전시 소식이 올라왔지만 미리 보지 않기 위해 얼른 넘기곤 했었지요. 텍스트로 먼저 마주한 전시를..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