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증표

2018. 7. 30. 02:00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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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3일


예전에 아버지가 항해를 하다가 잠시 쉬어가셨던 마주로 섬 근처를 지났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 50분, 뉴질랜드 시간으로는 새벽 1시 50분이었어요. 바깥 기온은 영하 48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태평양 밤 바다를 가로지를 때 수두룩하게 박힌 은하수의 별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는 걸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최첨단 비행기(!)라 그런지 창문도 전자식으로 전부 닫혀 있어 별은 한 점도 볼 수 없었습니다. 난기류도 심하지 않아 마치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지요.

대신, 마음의 난기류가 심했습니다. 아래로는 원하는 삶을 위해 유리 온실을 박차고 나온 후련함이, 위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족에 대한 애달픔이 맞부딪쳤지요. 마음이 남태평양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을 때, 뜻밖의 것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려 놓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 내 식 ......!!

그림 - 에어뉴질랜드 기내식
ⓒ chaelinjane, 2018


희한하게도
 비행기에서 먹는 설익은 음식 맛을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가끔씩 그 기분을 내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곤 했었습니다. 에어 뉴질랜드 항공의 기내식은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 가히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기내식은 그 순간 제게 있어 '달콤하고 완전한 현실의 맛'이었습니다. 음식 하나로 감정이 심해에서 대기권까지 금세 치솟을 수 있다니, 역시 기내식은 위대하군요. 이렇게 기내식과 연관된 저의 만족과 행복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더 많은 기내식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모험을 이어나가야겠어요.

아침을 먹을 때 즈음 비행기 아래로 오랜 만에 땅이 보였습니다. 생각보다 집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으로 가득했습니다. 내가 새롭게 발을 디딜 곳이로구나. 그 순간 저 아래에 반짝, 무지개가 그려졌습니다. 환상적인 대자연의 환영 인사였지요. 앞으로의 모험에 특별한 기운이 더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림 - 환영 무지개
ⓒ chaelinjane, 2018

 

무지개의 특별한 힘 덕분인지, 까다롭다던 입국 심사와 물품 검사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김치, 고추장 없는지 확인하더라고요.) 너무 순조로워서 괜히 불안할 지경이었지요. 숙소에 짐이라도 미리 내려놓고 싶어서 도착하자마자 주인에게 연락을 했으나 한 시간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어서 무작정 가보기로 했습니다. 무지개의 행운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공항을 나서자 뉴질랜드의 첫 공기가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림 - 뉴질랜드 입국심사
ⓒ chaelinjan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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