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2011) - 감각 상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2022. 3. 5. 23:00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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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1차 접종 후 5개월 만에 2차 접종을 맞았다. 그동안 (아마도 백신 때문에)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겼고 해를 넘기고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치료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다음 백신을 맞을 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5일간의 긴 명절 휴가를 2차 접종 회복 기간으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1차 때 몸이 혹독한 상황을 겪은 뒤였고, 2차 때 그 증상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5일의 공백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다른 무언가를 하기에도 너무나 달콤한 기회였지만 더 큰 사회적 자유를 위해서 희생을 감내하기로 했다. 여행 대신 집 앞을 산책하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나를 초월한 이 지겨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하면서.

 

백신 접종을 위해 긴 휴가를 포기하는 마음을 달랬던 산책
ⓒ2022. Chaelinjane All Rights Reserved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절묘하게 맞는 영화를 만나다

    백신을 맞고 약에 취해 있었던 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2011년에 개봉한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의 SF 로맨스/드라마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감각이 하나씩 사라져 가는 정체불명의 전염병 속에서 세프로 일하고 있는 마이클(이완 맥그리거)과 전염병을 연구하는 과학자 수잔(에바 그린)이 만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발견해나가는 이야기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lt;Perfect Sense(퍼펙트센스)&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gt; 포스터
영화 퍼펙트 센스 포스터. 플라톤의 '향연'이 생각났던 영화 속 장면이 쓰였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전염병의 첫 증상은 '갑자기 찾아오는 슬픔'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갑자기 슬픈 감정에 빠진 사람들은 잃어버린 사람들과 지난 일들을 추억하며 눈물을 참지 못한다. 수잔과 마이클은 각자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수잔의 집 옆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마이클은 창가에 있던 수잔에게 담뱃불을 빌리며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들이 만난 건 전염병의 초기 단계였고, 갑자기 아버지 생각에 울음을 터뜨리며 슬픈 감정에 빠진 수잔을 위로해주다가 마이클도 함께 초기 증상을 겪게 된다. 


코 끝에서 사라진 냄새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에게 찾아온 후각 상실. 생선에 코를 박고 있어도 비린내 한 줌 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감각 이상에 레스토랑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이클은 미각을 자극하는 레시피를 개발해내고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지켜나가며 상황을 극복해나간다. 그렇지만 자극을 느끼지 못하면 그에 해당하는 뇌의 기능은 조금씩 퇴화하게 된다. 냄새가 사라지자 그에 얽힌 기억까지도 점차 희미해진다.


극심한 허기 후 영영 잃어버린 맛의 세계

    미각을 잃기 직전 사람들은 꽃, 립스틱, 생고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몇 시간이 흐르고 뒤늦게 현실을 인지하지만 이미 미각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냄새와 맛이 사라지고 난 요리에 남은 것은 소리와 식감. 마이클은 절망을 딛고 음식의 색과 형태, 온도와 농도를 살려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성공한다. "Life goes on!"을 외치며 끝까지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마이클. 사람들도 잃어버린 감각보다는 남아 있는 감각에 더욱 집중하며 삶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이쯤에서 전염병의 진행도 멈췄으면 하는데, 삶이 계속되는 만큼 이 기이한 질병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폭주하는 폭력성과 청각 상실

    고도 청각 상실 증후군(Severe Hearing Loss Syndrome). 이제 사람들은 극심한 분노를 표출한 뒤에 소리를 잃게 된다. 아수라장이 된 장면들이 아무런 소리 없이 함께 흐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생존'이 되었고 요리는 밀가루와 지방을 공급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한다. 마이클에게 먼저 나타난 폭력성으로 수잔은 상처를 가득 안고 그를 떠난다. TV 방송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긴급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된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건 참혹하게 변한 세상뿐. 절망에 빠진 이들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역시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글과 수화로 소통하며 예전과 같은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해와 용서, 살아있다는 따뜻한 온기

    감각이 상실되고 생활이 붕괴되어도 결코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랑'의 감정이었다.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슬픔과 절망 뒤에 이미 온전하고 완벽한 감각이 자신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온 세상은 극도의 기쁨과 환희(Euphoria, 유포리아)로 가득 찬다. 사랑을 깨닫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수잔과 마이클은 마침내 손 끝에 닿기 직전, 시각을 잃는다.

 

"It's dark now. But they feel each other's breath. And they know all they need to know. They kiss. And they feel each other's tears on their cheeks. And if there had been anybody left to see them, then they would look like normal lovers, caressing each other's faces, bodies close together, eyes closed, oblivious to the world around them. Because that is how life goes on. Like that."

(이제 암흑뿐이다. 하지만 서로의 숨결을 느낀다. 그리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안다. 키스를 한다. 서로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느낀다. 어딘가에 시력이 남아있는 사람이 그들을 본다면 그저 평범한 연인들처럼 보일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고, 몸을 밀착시키고, 눈을 감으며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한 검은 화면을 마주하며 수잔의 마지막 대사를 숨죽이며 따라간다. 아마도 무한한 어둠의 세계에서 더듬거리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확신하는 그 순간은 더없이 환했을 것이다. 이후에 이들에게 촉각마저 사라진다면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뇌 기능이 현저히 줄어들 때에도 사랑은 사랑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위장에 소화되지 못한 음식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산 채로 발견되었다는 메머드의 사체처럼, 인간도 예기치 못한 어느 날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품은 채 순식간에 지구 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의지에서 힘을 얻는 존재

    오래 앉아 있지 말고, 찬바람 쐬지 말고, 일은 나중에 하고, 뭐든 많이 먹어라, 커피는 마시지 말고, 계속 누워 있고, …. 엄마는 절대적 안정이야말로 백신 부작용의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믿었다. 우리가 겪었던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엄마의 과도한 염려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 자꾸 몸을 일으켰다. 명료해지는 찬바람이 몹시 긴급했고, 물을 몇 배로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커피가 주는 위로가 절실했으며,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빨리 끝내 놓고 싶었고, 움직임이 적으니 최소한만 먹고 싶었다.

    강제로 계속 누워 있는 일은 불안과 무기력을 만들어냈다.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끝도 없이 나불거리는 TV 소리. 혼자 있고 싶었다. 나의 의지로 얼마든지 정적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TV 소리 때문에 너무 괴롭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각자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트인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넓은 거실에라도 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 닿았는지 엄마는 흔쾌히 거실을 포기해주셨다. 몇 달 전 읽다가 멈춘 책을 식탁에 앉아 두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그제야 이 상황에서 내가 주체성을 획득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한된 상황에서 나의 의지대로 돌파구를 찾아나간 경험이었다.

    감각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코로나 19 같은 전염병이 횡행하는 것도 한 개인의 영역 밖의 문제다. 질병이나 전염병의 영향으로 개인의 일상이 제한되는 것은 감각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일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황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수동적일 수밖에 없을 때 불안과 무기력은 자연스레 생겨난다. 하지만 어떻게든 제한된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삶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현실을 돌파할 작은 수단을 가지는 것. 마이클이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소리와 냄새가 사라진 상태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애를 쓰고, 어떻게든 가능한 상황 속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소중한 자유의지다. 상황은 바꾸기 힘들지만 생각은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 것.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의 끝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수잔의 말처럼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따스함을 먼저 나누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세상에 건네는 이해(Understandings)포용(Acceptance), 용서(Forgiveness) 그리고 사랑(Love)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만 행할 수 있고 일단 시작되면 전염병조차 막지 못한다. 온 존재를 너머 빛을 발산하게 하는 놀라운 감정을 무슨 수로 멈출 수 있을까. 유일하게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으로서 이해와 포용, 용서와 사랑은 삶의 끝자락에서 부수적인 사치라기 보다는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반대로 오감을 온전하게 가지고도 이 네 가지를 행할 수 없다면 인간은 헛헛한 존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는 거리 연극을 통해 사람들이 잃고 있는 감각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행위 예술자가 등장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에 등장한 피아노맨의 비틀스 연주를 듣는 순간, <퍼펙트 센스>의 행위 예술자가 생각났습다. 그녀는 허구 속에 존재하지만 독일 출신의 피아노맨은 현실에 있었고, 그가 최선을 다해 따뜻함을 나누려는 마음이 전해져 눈물이 났다. 투항한 러시아 군인에게 전화를 빌려주는 마음과 세계 곳곳에서 타국의 비극을 가까이 느끼고 마음을 나누려는 시도들을 생각해본다.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에서 피난민들을 위해 연주를 하고 있다

 

    전쟁에 얽혀 있는 경제적 이득 그 모든 것 위에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태도가 굳건히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감각을 초월하는 완전함은 이해와 포용, 용서와 사랑을 통해 가능하고, 이것이 필요한 상황은 감각이 끝장나는 어느 때가 아닌 바로 지금이다. 지금, 내 곁에서부터. 인류에 큰 위기와 혼란이 생겼을 때 그 안에서 두려움과 행복이 어떻게 퍼져가는지 실감하고 싶다면, 우리가 삶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할 단 한 가지가 무엇인지 해답을 알고 싶다면, 영화 <퍼펙트 센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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