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날의 푸념

2022. 6. 8. 20:40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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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연속된 일련의 날씨가 나의 상황과 기분에 꼭 들어맞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밤까지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린다. 전날 골라온 두 권의 책이 그동안의 활자 욕구를 모조리 채워줬다. 비구름이 실타래 같은 수분을 엮어 햇살을 단단히 가려준 덕분에 일요일다운 단잠도 중간중간 잘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컨디션 관리하며 보냈던 나날들도 환절기 무렵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3일 내리 쉬었던 연휴 때문에 긴장이 풀린 까닭인지, 주말에 동틀 무렵의 하늘을 보며 귀가한 탓인지 이맘때쯤 찾아오는 감기 몸살에 꽤나 고생이다. 여성의 몸이 가장 예민해지는 시기도 함께 찾아왔다. 꾸준한 운동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 해답일 뿐이고, 평소에 잠을 푹 자면 피로가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6월에는 매일 운동을 해서 달력을 꽉 채울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6월 5일의 일기에는 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가 '훼손'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이 상태를 높이 평가했다. 컨디션이 일그러지면서 그 흐름이 끊겨 화가 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것도 다 몸에 독이 되는 '강박'의 부분이겠지. 자신을 느슨하게 다루고 싶다가도 이상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지금의 모습이 보기 싫어 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이것은 어두운 욕심일까.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정신이 멍해진 시기에 맞춰 2022년의 절반을 돌아보고 있다.

뉴질랜드의 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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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은 기분-을 잘 눌러담아 연차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응 ~ 나 오늘 일하기 싫어!' 하는 충동적인 기분이 아니라, 몸이 정말 좋지 않았는데도 한번 참아보았다. 참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것도 자기 고집, 자기 강박의 일부분이라는 걸 안다. 작고 사소한 것, 괜히 긁어 떨어지는 부스럼을 쓸어 담는 수고로움 보다는 더 큰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아껴두는 마음이랄까. 현관문까지 쫓아와 오늘 하루 회사 쉬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향해 5초간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도 이런 마음으로 참아왔던 것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싫어서. 작은 돌 위에서 미끄러지면 그대로 물살에 이끌려 강 하류까지 내려갈까 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냉동실에 있던 비싼 소고기는 몇 번 씹다가 도저히 삼키지 못하고 다 뱉어냈다. 좋은 것들을 다음을 위해 아끼고 아끼면 이렇게 다 뱉어버리게 되는 걸까. TV에서는 중년 배우가 온갖 쥐어짜는 소리를 내며 듣기 싫은 짜증을 퍼붓고 있어 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책을 읽는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해변에만 있다가 비로소 바다에 들어온 기분이다. 모든 게 다 있는 시대에서 잘 살펴보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는 세상. 책과 음악이라도 마음껏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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