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도쿄에서 만나는 아방가르드 일렉트로닉 음악・디지털 예술 축제 <2022 MUTEK Tokyo>

2022. 12. 6. 02:00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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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친한 언니와 함께 분무기 같은 가벼운 비를 맞으며 데크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하늘에 흩어진 빗물이 희뿌연 장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간단한 술과 안주로 저녁을 먹고 있던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입고 있던 재킷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졌다. 선실 안에 있던 타올로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사람처럼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아주 서서히,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가 나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봄밤의 가랑비처럼 내가 서서히 스며든 세계가 있다. 종이와 아날로그,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는 성질이 별안간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는 기계의 중심부로 향한 것이다.

 

경멸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지독한 편견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이 세계와 멀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힙합, 리듬앤블루스를 기반으로 여기에 재즈와 펑크, 디스코 장르가 결합한 음악들을 즐겨 들었던 나에게 빠른 템포의 EDM 음악은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클럽의 과한 밤 문화 이미지가 결합되어 이런 전자 음악들은 더욱 '더럽고 불쾌한 것'으로 느껴졌다. 정신 사납고 품위를 잃은 음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러다가 2013년 제임스 블레이크의 <Overgrown> 앨범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일렉트로닉 음악의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커다란 스피커로 이 음반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다음 트랙이 나올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가스펠이 뒤섞인 낯선 풍경에 처음 경험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의 음악이 포스트 덥스텝 일렉트로닉 장르라는 건 음반을 접하고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장르는 그저 음악을 담는 커다란 표현의 실루엣일 뿐, 그 안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1. <I Am Sold> by James Blake

I Am Sold in the album [Overgrown] by James Blake

 

2. <Voyeur> by James Blake

Voyeur in the album [Overgrown] by James Blake 

 

3. <Our Love Comes Back> by James Blake

Our Love Comes Back in the album [Overgrown] by James Blake

 

4. Bonus Track <Everyday I Ran> by James Blake

Every Day I Ran in the album [Overgrown] by James Blake

 

    특정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된다. 그게 사랑으로 변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노랫말이 섞이는 멜로딕 하우스・테크노로 시작된 여행이 드럼앤베이스,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세계 한가운데까지 왔다. 20년 전에 나온 음반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매일 새로운 일렉트로닉 음반들이 쏟아진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여정에서 수많은 보물들을 얻었다. 우연한 행운으로 이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해외 아티스트들과 만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함께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마음은 설레고 짜릿하다.

 

5. Chaos in the CBD

Chaos In The CBD (set) at Djoon・Make It Deep

 

6. Aleksandir

Yamaha by Aleksandir

7. Jus-Ed

Jus Ed 60 min Boiler Room Berlin DJ Set

 

 

MUTEK, 다양성을 끌어안는 일렉트로닉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일렉트로닉 음악에 마음을 열고 이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고 있다. 뮤텍 도쿄(MUTEK Tokyo)가 2022년 12월 7일(수)부터 12일(일)까지 5일간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다는 소식도 아티스트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MUTEK은 음향, 음악, 시청각 예술 분야 등 다양한 디지털 창작 활동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멕시코시티, 부에노스 아이레스, 바르셀로나, 도쿄 등의 도시에서 매년 5~6일간 열리는 음악 예술 축제다. 도쿄는 2016년부터 MUTEK에 합류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확정된 라인업 / 출처 : MUTEK JP 홈페이지(tokyo.mutek.org)

 

    지난 10월, 연차가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도쿄행 계획을 세웠다.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휴가를 쓰려고 올해는 꿋꿋이 견디고 있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투잡, 쓰리잡을 해낸 나에게 멋진 선물을 주기로 했다. 멋지게도 10월 31일까지 얼리버드로 50%로 할인된 가격에 12/9(금) 티켓과 12/10(토)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5일 동안 모든 공연을 다 볼 수 있는 전일권 티켓이 따로 있었지만 수요일과 목요일 공연은 사정상 볼 수가 없어 개별 날짜로 구매했다. 수수료까지 포함한 양일 티켓 가격은 7,572엔. 유명 아티스트의 콘서트 티켓값에 비하면 큰 무리가 없는 가격이다. 항공권을 구매할 때만 해도 언제 12월이 오나 싶었지만 벌써 도쿄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부야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크나큰 기대를 안고, 떠나는 날까지 해야할 일들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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