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천재 뮤지션과 인공지능의 선물, 제임스 블레이크xEndel의 "Wind Down"

2022. 8. 19. 00:00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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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영국 아티스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낯선 음반을 만났다. 개인의 상황에 맞는 사운드 환경을 제공하는 독일의 소프트웨어 Endel사와 함께 협업한 음반이라고 한다. Endel은 사운드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집중하고 좋은 잠을 자고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커버 사진을 훑어보면 아래쪽에 'Science-powered Soundscapes'라고 적혀 있다. 애초에 수면 유도를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임스 블레이크의 다른 음반들보다 앰비언트적인 특성을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곡들은 마치 2019년 발매된 [Assume Form]의 마지막 트랙 'Lullaby for My Insomniac(나의 잠 못 드는 이를 위한 자장가)'의 연장선 같기도 하다. 이 곡이 인트로가 되어 1시간짜리 자장가([Wind Down])로 이어져도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James Blake x Endel - Wind Down 앨범 표지
James Blake x Endel [Wind Down]



    오묘한 힘을 가진 음반 [Wind Down]은 잠이 찾아오지 않은 밤들 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휴식이 필요할 때에도 나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앰비언트 음악들은 예전부터 인간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장르에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들었던 앰비언트 음악 중에 가장 위화감이 없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밤새 이 음반을 틀어두고 잠이 들었던 적도 많다. 하루의 번잡한 스케줄이 모두 끝나고 감각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침대 위나 자동차 안에서 듣는 [Wind Down]은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에 온화한 차분함을 가져다준다. 대체 불가능한 이 음반의 매력 덕분에 지난 3개월 동안 가장 많이 찾아 들은 음반이기도 하다.


James Blake [Wind Down]



    Endel에서 제작한 비주얼라이저가 음악과 매우 조화롭다. 영상 속의 음악은 앨범으로 발매된 트랙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시간 동안 무한히 이어지는 우주 같은 소리를 듣고 있자면 이내 신경이 안정되고 눈이 무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록자들은 시간의 경계 없이 작업을 할 때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도 뇌가 엉뚱하게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불면으로 피곤이 덕지덕지 쌓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을 추천한다. 이왕 잠도 오지 않는 시간에 그저 눈을 감고 편안한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며 재생해 보자. 뜻밖의 반가운 수면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이미지도 창조해내는 최근의 인공지능 기술은 점점 도구(Tool)에서 동료(Co-creator)의 위치로 발전하고 있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목소리를 활용해 Endel AI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빚어내는 수면 음악은 정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다. 마치 인간의 지능 그 이상에서 촘촘히 설계된 구조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은 그저 '기능 음악'에 불과했지만, 유능한 뮤지션이 이를 도구로 다루자 또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감각에 기술적으로 보다 완벽한 인공지능이 가미되는 작업 형태는 앞으로도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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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lake - Lullaby for My Insomniac (Live at the Fox Theatre, Pomona)

 



    제임스 블레이크의 라이브 영상 하나를 덧붙인다. 앞서 얘기한 [Assume Form]의 마지막 트랙인 만큼 'Lullaby for My Insomniac'은 이날 공연에서 가장 마지막에 부른 곡이었다고 한다.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해 라이브로 한 겹 한 겹 목소리를 쌓아가고 그 위에 노래를 부르며 계속해서 곡을 확장해나가는데, 듣는 귀도 보는 눈도 황홀해지는 것 같다.

    최근 몇 주간 자기 전까지도 해야할 게 있어 열대야와 더불어 매우 얕은 수면에 시달렸다. 어젯밤 이 글을 완성하면서 다시 [Wind Down]을 틀어두었고 역시나 평소보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음악을 넘어 '사운드 테라피'로 기능할 수 있는 앨범이 있어 언제든 꺼내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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