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파라다이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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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고립'으로부터 시작하는 독립 생활
독립, 온전한 인간이 되는 연습 서울 생활 4개월 차.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동안 낯선 분야의 일을 익혔고, 막막했던 첫 장거리 연애는 안정 궤도에 올랐다. 매일 회사일, 외국어 공부, 제2의 삶을 위한 공부, 독서, 글쓰기, 집안일에 전념하며 지낸다. 요리와 자잘한 집안일은 독립생활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내 몸과 터전을 직접 돌보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을 일깨워주니까. 아기새가 야생에서 먹이를 찾고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은 독립을 통해 생물로서의 본성을 회복한다. 첫 서울생활을 시작한 3월, 이곳의 생활 물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립을 시작하자마자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세웠다. '수입의 50% 저축'이 목표다.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2023.07.15 -
서른 둘, 어른이 되어 맞이하는 첫 가족여행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집단이 있다.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그와 유사한 그룹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작은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개인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피와 시간을 나눈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역할과 상호 간 약속을 정한다. 각자의 습관에 물들기도 하고, 불편한 점들이 있다면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사회를 경험하고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간다. 운이 좋다면 가족 구성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연장되어 가족의 울타리에서 세상 바깥으로 자신의 영역을 무사히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등과 타협(혹은 비타협)의 터널을 지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
2022.10.19 -
[전시] 기록을 경험하는 공간, 프랭코의 <HOMEMADE>
요즘 남천동 타코들며쎄쎄쎄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다. 5월부터 7월까지 넉넉한 기간으로 열린다. 덕분에 전시에 오시는 손님들도 급하지 않게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어 한 번에 한 분씩 차분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일은 컨디션 관리. '체력과 기분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진행했다. 그래서 4월에는 몸과 정신의 상태를 살피며 살얼음을 걷듯 할 일들을 해나갔다. 전시가 시작되었고 이제야 미뤄둔 피로가 한 움큼 밀려오고 있지만,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후련하다. "돈 쓰고, 시간 쓰고, 피곤해서 아프고, 액자 때문에 짐만 늘고, 이리저리 손해만 보는 사진전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손목 통증, 발목 통증, 최근에는 다래끼 초기 증상까..
2022.06.26 -
[음악] 환한 빛으로 가득 찬 고요, Hammock의 "Silencia"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일상을 이어가야 할 때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지요.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는 없으니 엉망인 상태에서라도 최선의 결정과 행동을 이어나갑니다. 예민하고 여린 사람들은 벅찬 현실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도 감당해야 합니다. 심지의 가장 끝을 향해가는 초의 불꽃처럼 그렇게 번 아웃은 찾아옵니다. 요가와 비파사나(Vipassana, 위빳사나)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빈틈없는 스케줄 속에서 긴장과 집중을 이어가는 일이 상당한 피로와 시간 결핍을 가져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차단하며 일에 몰입했지만, 완전히 혼자 있는 순간에는 나의 민낯으로..
2022.02.19 -
[앵글매거진/Angle Magazine] "The Meditative Photos of Chaelinjane" by Hannah Polinski
부산 해운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시점에 앵글 매거진(Angle Magazien)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13년에 론칭된 앵글 매거진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외국인 독립 예술가들을 다루는 집단입니다. 오래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아오던 Philips Brett의 제안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사진에 대한 전문 비평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앵글 매거진에 실린 영어 원문과 제가 번역한 한국어 버전을 아래에 준비했습니다. 저에게 사진은 '기록과 자기 치유'를 위한 작업으로 상업 사진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사진이 저에게 치유를 준 것처럼, 저의 사진도 누군가에게 평온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토록 이기적인 제 사진을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는 시선에 그저 감사할 따..
2022.02.07 -
[전시 후기] <사적인 파라다이스(2021)> 사진전 / 해운대 브루커피
한 줌의 평온 밤새 바다를 표류한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가 절실하듯 태양빛에 오랫동안 데워진 모래 속으로 파고들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슬픔과 불안의 주위는 습도가 높고 서늘해서 이 감정 구간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 곳. 방전된 내가 기운을 회복하는 섬. 외부의 영향 없이 나의 의지로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낙원. 고대 사람들이 시나 연설을 암송하기 위해 기억의 궁전(Mind Palace)을 이용하는 것처럼 나는 내부에 추상적인 섬을 만들어 평온을 얻기 위한 재료들을 모아두기로 했다. 그래서 일상과 여행지에서 조금씩 떼어낸 평온한 순간을 뭉쳐 자그마한 섬을 조성했다. 그 섬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종일 나오고 보고 싶은 영화 장면이 반복되며 ..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