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바람을 전합니다

2018. 8. 28. 22:59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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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지난 금요일 아침 늘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무언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길가 바로 옆에 빼곡한 숲으로 통하는 오솔길이 나 있는 거예요.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뜻 보면 그저 큰 나무들이 연속적으로 늘어져 있어 사람 손이 닿지 않게 보존된 깊은 숲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통로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습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바다 수평선 끝에서 '무언가'─당신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기에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을게요─를 발견한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습니다.

집에 와 카메라를 챙겨 들고 미지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어귀에서부터 진한 숲 향기에 사로 잡혔어요. 좁은 내리막길이고 진흙탕이 절반이었기 때문에 발을 조심해서 디뎌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 방치된 야생의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졌지요. 계속 가면 무엇이 나올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지만 출구가 나오겠거니 생각하며 끝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원초적인 모험 감각이 깨어나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길 아래로 흐르는 작은 개울 소리와 여기저기 숨어 낯선 존재의 출입을 알리는 새소리가 한 데 섞여 숲 속 깊은 곳으로 퍼졌습니다.

뉴질랜드에서만 자라는 니카우 야자수의 날렵한 잎새 끝으로 샹들리에의 크리스탈처럼 아침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길이 좁아서 옷에 온통 이슬을 묻히며 걸었어요. 머리 위로는 높게 솟은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아래로는 파릇한 잎을 가진 식물들과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숲의 정취에 한창 몰입할 때쯤 출구가 나왔어요. 알고 보니 집 아래 버스 정류장 근처의 놀이터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총 770m에 이르는 작은 숲이었지만 왕복 거리로 잠깐의 산책을 즐기기에는 딱이었습니다. 숲을 곁에 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제는 숲 산책을 기대하며 매일 아침 눈을 뜨게 되었어요. 숲의 공기는 아무리 맡아도 계속 맡고 싶거든요.

이곳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면 날로 심각해지는 한국의 대기 상태가 생각나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공기 문제가 가장 심각한 중국에서는 캐나다 로키 산맥 공기 7.7리터짜리 한 캔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만 8천 원에 팔리고 있는데 이 마저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합니다. 물을 사 마시는 게 말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는 공기가 물보다 더욱 비싼 값에 팔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맑은 공기는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지만 이런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더욱 희소해질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 시점에, 제주 비자림로 삼나무 915그루를 닷새만에 충분한 숙고 없이 무참히 잘라낸 것은 참으로 기계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자연과의 공존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유일한 길인데 말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욕심을 멈춰야 하는 지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빠른 속도와 편리한 교통이 없어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연 없이는 어떤 생물도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근원에 자연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릴 때 배운 걸 왜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다 잊게 될까요. 잘라내야 할 건 나무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자연 훼손을 쉽게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물질적인 가치를 위해 언제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아야 할까요.

Wenderholm Regional Park, Waiwera, New Zealand / ⓒchaelinjane, 2018


이곳의 맑은 공기를 가득 담고 싶지만 사진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쉽기만 합니다. 해가 지는 웬더홈 숲에서 평온을 만끽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곧 9월이네요. 그곳의 계절과 만날 지점이 찾아오고 있어요. 자연의 생명력을 가득히 느끼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공기 정화를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을 주위의 풀과 나무들에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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